세계사 32

종교적 관용과 정치적 독립의 수호자, 오라녜공 빌럼 1세

오라녜공 빌럼 1세(Prince van Oranje Willem 1)는 1533년 신성로마 제국 딜렌부르크에서 나사우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1544년 오라녜와 나사우의 영지를 상속받았으며, 이후 신성로마 제국 황제이자 에스파냐 왕국 초대 국왕 카를 5세(카를로스 1세)에게 발탁됐다. 그는 에스파냐 2대 국왕이 된 펠리페 2세로부터 네덜란드 지방인 홀란트, 제일란트, 위트레흐트, 프랑슈콩테 4개 주의 총독으로 임명받았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주창한 이래 유럽에는 프로스테스탄트 사상이 확산됐는데, 빌럼은 가톨릭교도였으나 에라스뮈스의 인본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종교적으로 애초에 중립적이었으며 가족 중에도 루터교 신자가 다수 있었다. 하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펠리페 2세는 개신교 신앙..

카테고리 없음 2022.08.24

입지전적 성공신화의 비참한 결말, 주전충

주전충은 852년 빈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당나라 말기 일어난 대대적 농민반란인 '황소의 난'에 참전해 장수의 재능을 드러냈다. 그러나 황소를 배신하고 조정에 항복한 뒤, 그 공으로 절도사에 올랐다. 그의 원래 이름은 주온이었는데, 당 황제 희종으로부터 당나라에 충성하라는 뜻을 담은 '전충'이라는 이름을 받아 개명했다. 주전충은 반란군 잔당을 평정해 양왕으로 봉해졌으며, 환관들의 전횡에 의해 쫓겨난 황제 소종을 복위시켰다. 이때 수백 명의 환관을 학살했고, 본격적인 야심을 드러내며 황제를 협박해 낙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는 장안을 파괴하고 황족을 대거 살해했으며 소종까지 시해했다. 904년 당의 마지막 황제인 열세 살의 애종을 옹립했는데, 이때 '청류'라 불리던 당나라의 고관 30여 명을 처형해 시..

카테고리 없음 2022.08.24

역성혁명의 시조이자 실패한 이상주의자, 왕망

왕망은 기원전 45년 한나라에서 태어났는데, 11대 원제의 왕후인 왕정군의 조카였다. 기원전 8년 12대 성제의 치세 당시 재상직인 대사마에 오른 그난 세력을 잡기 전에는 청렴하고 인망이 높아 문무백관과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이후 13대 애제가 요절한 서기 1년에 왕망은 아홉 살인 평제를 추대하여 14대 황제로 옹립했고, 자신의 딸을 왕후로 삼아 황제의 장인이 됐다. 그리고 서기 6년에 평제를 독살하고 두 살짜리 유영(어린아이라는 의미로 '유자영'이라고도 불린다)을 황제로 세웠으며, 자신을 가황제, 섭황제 등으로 칭하며 실권을 장악했다. 결국 왕망은 서기 8년에 선양(임금이 살아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왕위를 양도하는 것)이라는 형식으로 제위를 찬탈,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건국했다. 하지만 ..

카테고리 없음 2022.08.23

삼대 만에 멸망한 통일 왕조의 창업군주, 수문제 양견

양견은 541년에 북주의 12대장군 수국공 양충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지위를 물려받았다. 큰딸이 선제의 황후 중 한 명이 됐으며, 579년 일곱 살의 정제 우문천이 즉위한 후에는 섭정이 되어 실권을 장악하고 승상과 수왕의 지위에 올랐다. 북주의 제5대 마지막 황제인 정제로부터 581년 제위를 선양받아 수나라를 건국하고 장안에 도읍을 삼았다. 즉위 후 정제를 비롯한 북주의 황족 다수를 살해하고 남벌을 진행해 589년 후한 말 황건의 난 이후 분열됐던 중국 대륙을(과도기였던 진나라의 통일을 제외하고) 거의 400년 만에 재통일했다. 양련은 과거제의 전신인 선거제를 도입하고 중앙관제를 삼성육부제로 개편했으며 균전제를 확립시키는 둥 제도를 정비해 나라를 안정시켰다. 또한 불교를 장려하고 국토를 넓히며 '개황..

카테고리 없음 2022.08.23

로마 제국의 암살당한 황제들

칼리굴라(Caligual)는 서기 12년 안티움에서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의 양아들인 게르마니쿠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손녀인 아그리피나의 아들로 태어났다. '칼리굴라'는 어린시절 병영에서 자라며 로마군의 군화인 칼리가(Caliga)를 신고 다닌 그에게 병사들이 붙여준 애칭('작은 군화' 라는 의미)이다. 그는 서기 37년 티베리우스 사망 이후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로마의 3대 황제로 즉위했다. 즉위 초 칼리굴라는 민중과 군대와 원로원 모두에 인기가 높았으며 제국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을 신격화하고 인기에 집착하며 재정을 파탄시키는 등 포악과 실정을 거듭했고(지독한 열병의 후유증이었다고 한다), 서기 41년 결국 최측근인 근위대장 카시우스 카이레아와 병사들에 의해 궁..

카테고리 없음 2022.08.23

공화정과 운명을 함께한 원칙주의자, 키케로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기원전 106년 로마 남부 아르피눔의 유력 가문에서 태어나 변호사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로마 제일의 웅변가이자 문필가로 이름을 날렸다. 기원전 75년 재무관으로 선출된 뒤 시칠리아 총독으로 재직했고, 안찰관과 법무관 등의 직책을 거쳐 기원전 63년 집정관에 당선됐으며, 카틸리나의 반란 음모를 타도해 '조국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반란 가담자를 처결하는 과정에서 독단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는 이유로 실각하여 추방당했다. 충실한 공와주의자였던 키케로는 내전 당시 카이사르에 반대하고 폼페이우스를 지지했으며, 카이사르의 집권기간에는 정계에서 은퇴해 집필에 몰두했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에는 막강한 권력자로 부상한 안토니우스를 '국가..

카테고리 없음 2022.08.23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독재자,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는 세계사에서 제일 유명한 영웅이자 암살당한 요인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기원전 100년 로마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카이사르는 매력적인 웅변가였으며 우아한 문필가였고, 전략전줄에 비상한 군인일 뿐 아니라 정치력과 권모술수에 있어서도 탁월했다. 기원전 60년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제1차 삼두정치를 공모했으며, 갈리아 전역을 제패하고 정치적으로 갈라선 폼피에우스와 반대파를 분쇄한 후에는 기원전 49년 독재관에 임명됐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7세를 여왕에 복위시킨 이집트 원정을 마치고 소어시아, 히스파니아, 아프리카의 반란을 평정한 뒤 종신 집정관이 됐다. 율리우스력(曆)을 챠용하고 빈민구제에 힘썼으며 식민지 건설을 활발히 했다..

카테고리 없음 2022.08.23

라이벌을 잘못 만난 불운의 명장, 폼페이우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Gnaeus Pompeius Magnus)는 기원전 106년에 태어나 열여덟 살 무렵부터 군단 지휘관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집정관을 지냈던 아버지가 동맹시 내전으로 사망했지만 숙청 과정에서 살아남아 술라 편의 선봉에서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싸운다. 술라의 사후에는 에트루리아의 반란군에 동조한 레피두스를 격파하고 곧이어 히스파니아(스페인)에서 세르토니우스를 진압했다. 스파르타쿠스의 노예반란을 마무리 지은 후에는 집정관으로 출마해 선출됐다. 로마 공화정 사상 최대의 군사지휘권을 가지게 된 폼페이우스는 단 3개월 만에 지중해에 난립하던 해적들을 소탕하고, 폰투스의 왕 미트라다테스를 토벌했다. 이후 시리아와 팔레스티나(팔레스타인)를 로마의 속주로 합병하고 돌아와 군단을 해산했다. 이..

카테고리 없음 2022.08.23

약자를 위한 숭고한 개혁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Tiberius Sempronius Gracchus)는 기원전 163년경 로마의 영웅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깔 코르넬리아와 유명한 장군이자 집정관을 두 번 지낸 평민귀족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장남으로 태어나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제3차 포에니 전쟁에 출전해 병사들의 신망을 얻었으며, 기원전 137년 재무관으로 선출된 후에도 누만티아 전선에서 훌륭한 외교력을 발휘해 유력인사가 됐고, 기원전 133년 호민관에 선츨됐다. 티베리우스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적 병폐를 바로잡기 위해 토지개혁에 착수했다. 이로 인해 평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으나 원로원을 비롯한 보수파 귀족세력을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마침내 농지개혁법안 투표일, 대회장의 혼란 속에서 강경반대파의 수장 스..

카테고리 없음 2022.08.23

대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기횢가, 필리포스 2세

필리포스 2세(Philippos Ⅱ)는 기원전 382년에 약소국 마케도니아의 왕자로 태어나 테베의 볼모로 갔다가 기원전 359년 왕위에 올랐다. 그는 철저한 군제개혁을 통해 스파르타, 아테네, 테베를 격파하며 그리스를 제패하고 신흥국 마케도니아를 '코린토스 동맹(헬라스 동맹)'의 의장(헤게몬) 지위에 올려놓았다. 페르시아 원정을 계획하여 기원전 336년 준비를 거의 마쳤을 즈음에 파우사니아스라는 친위대원에게 암살당했는데, 궁중암투로 추정되지만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필리포스 암살의 배후가 아들 알렉산드로스를 왕위에 올리려는 올림피아스 왕비라는 설도 있고, 적국 페르시아에서 사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만약 필리포스 2세가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면 알렉산드로스 3세가 이룩한 대제국 건설의 위업은 사실상 그의 ..

카테고리 없음 202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