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마라(Jean-Paul Marat)는 1743년 스위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십대부터 유럽 각지에서 과학을 공부했고, 삼십대 초반까지 런던에서 개업의로 활동했다. 《노예 제도의 사슬》등 정치이론서를 집필해 절대군주정을 비판했으며, 1777년 프랑스로 이주해 아르투아 백작(훗날의 샤를 10세) 휘하의 의사로 일하면서 과학적 실험과 논문 저술을 병행했다. 1783년에 의사를 그만둔 후 혁명의 최전선에서 급진적인 반체제 운동가로 활동했던 마라는 1789년 7월의 바스티유 습격 두 달 후 이라는 신문을 발행했다. 민중의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혁명의 적'에 대한 과격한 불관용 적대 여론을 조성함으로써 이들의 생살여탈에 영향을 미쳤으며, 1790년에는 잠시 영국으로 망명하기도 했으나 곧 복귀해 왕당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