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르크세스 대왕(Xerxes the Great)은 기원전 519년경 다리우스 1세와 키루스 대왕의 딸 아토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비록 장남이 아니었지만 혈통의 정통성에서 우세하여 기원전 486년 즉위한 크세르크세스는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반란을 평정하고, 마라톤 전투에서 패퇴했던 아버지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대규모의 대(對) 그리스 전쟁에 나선다.
몇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아테네까지 진격했지만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했다. 플라타이아 투와 미칼레 해전에서도 잇달아 패하면서 그리스 원정은 실패로 끝났다.
에게 해의 재해권을 잃은 크세르크세스는 이후 수도 페르세폴리스의 호화로운 건축공사에 열중하고 말년에는 하렘에 칩거하다가, 기원전 465년 아르타바누스를 위시한 신하들에게 큰아들과 함께 암살됐다.
일설에 의하면 태자 다리우스의 사망에 책임이 있었던 아르타바누스가 보복이 두려워 크세르크세스를 암살했다고도 하고, 크세르크세스를 살해한 뒤 다리우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처형했다고도 한다.
그리스 · 페르시아 전쟁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의 전쟁은 기원전 492년에 시작돼 간헐적으로 약 150년 동안 진행되면서 유럽과 아시아의 관계에서 분수령을 형성했다. 고대 페르시아의 아카메네스(Achaemenes) 왕조가 멸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일진일퇴의 전쟁은 기원전 480년 8월 강력한 페르시아군과 열세한 그리스 연합군이 마주친 테르모필레와 아르체미시움 전투에서 결말이 난다. 테르모필레의 협곡에서 스파르타와 레오니다스(Leonidas) 왕이 이틀에 걸쳐 페르시아 군대를 막아내고 있는 사이, 해상에서 불과 350여 쳑의 그리스 함대는 세 배가 넘는 페르시아 함대와 맞붙었다.
레오니다스는 이틀째 날 휘하의 그리스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방어선을 이탈하자 자신의 군대를 그곳으로 급파한다.
다음 날 1천300(300명의 스파르타 완전 시민과 1천 명의 스파르타 외부 자유민)의 군대는 결사대로 방어선을 지키는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모두 전사했다. 페르시아는 그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너무 많은 군대를 잃어 전세가 약화됐고, 이후 수개월 동안 전개된 전투들에서 몇 배나 열세한 그리스군에 패배하고 말았다.
기원전 478년 아테네와 그리스 도시국가들 간에 페르시아 군대를 몰아내려는 델로스 동맹이 결성됐고, 그 노력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에 현실화된다. 기원전 330년 알렉산드로스의 군대에 의해 아케메네스 왕조가 멸망하고 페르시아는 알렉산드로스 휘하 장군 셀레우코스가 세운 왕조로 이어졌다.
이후 확장을 거듭한 페르시아는 1천 년 동안 서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했으며 유럽, 아프리카, 인도, 중국을 잇는 다문화경제를 건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