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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전권 장악을 위해 숙청된 돌격대장, 에른스트 룀

Genius Dotory 2022. 8. 28. 19:16

 에른스트 룀(Ernst Julius Rohm)은 1887년 독일 바이에른 주 뮌헨에서 철도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막시밀리안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제10보병연대에 입대했고, 1908년 뮌헨 사관학교 소위로 임관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 있었으며, 베르됭 전투의 전공으로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독일 제국 붕괴 후 공화정(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자 10만으로 제한된 국방군에 남았으나, 군인 신분으로 반공 민병대에서 활동했고 나치당에 가입했다. 이 무렵 아돌프 히틀러와 친구가 됐다.

1923년 11월 8일 히틀러가 공화제 타도 목적으로 뮌헨 반란(뢰벤브로이 '비어홀 폭동')을 일으켰을 당시 체포되어 불명예제대를 했다. 1928년 볼리비아 정부의 요청으로 군사고문을 역임했으며, 1931년 나치 돌격대(SA, 슈트롬압타일롱) 참모장을 맡았다. 이때 이미 수십만에 달한 SA는 경호 임무를 나치 친위대(SS, 슈츠슈타펠)에 넘기고 나치 사상에 동조하지 않는 공산주의자와 유대인에 폭력을 휘둘렀다. 1932년에는 폴란드 공산주의자 청년이 집에서 가족이 보는 가운데 SA대원에게 야만적으로 살해('포템파 사건')되는 일도 일어났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한 뒤 SA는 법적 자위가 상승해 준군사조직이 됐다. 룀은 당에서 절대적인 위치인 히틀러를 이름으로 부를 만큼 막역한 사이였으나 급진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구 프로이센 귀족들을 혐오했으며, 국방군과 갈등을 빚었다.

노동계급이 대다수인 SA는 룀의 '제2혁명' 주장에 호응했다. 룀은 자본가 세력을 배후에 둔 히틀러와 대립하기 시작했고, 훗날 SA 참모장이 된 빅토르 루체는 륌의 공개비판을 히틀러에거 보고하기도 했다. 

SA의 무력이 급속도로 강화되고 룀에 대한 개인숭배 풍조가 SA내에 확산되자 군부의 경고를 받은 히틀러는 1943년 룀을 숙청하기로 결심했다. 하인리히 힘러 휘하의 게슈타포(비밀경찰)는 SA의 반역혐의를 추적했으며, SS소속 보안대(SD) 사령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룀이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정권 전복을 기도했다고 증거를 조작했다. 이에 히틀러는 SS에 동원명령을 내린 동시에 휴가를 떠난 룀에게 바트비제에 SA 지휘관을 소집하라고 요구했다.

1934년 6월 30일 새벽, '장검의 밤(긴 칼의 밤)' 작전이 실행되어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못했던 룀 이하 SA 지도부가 일망타진됐다. 히틀러가 직접 룀을 체포했고, 히틀러에 반항적인 국방군 내 보수파도 숙청됐다.

룀은 뮌헨 슈타델하임 형무소 독방에 감금됐다. 히틀러는 그간의 친분과 공로를 고려해 룀을 살려주려 했으나 하인리히 힘러와 헤르만 괴링, 파울 요제프 괴벨스 등의 반대고 자결 명령이 내려진다. 그러나 룀은 권총자살을 거부했다. 결국 1934년 7월 2일, SS 장교이자 다하우(다카우) 강제수용소 소장 테오도어 아이케(혹은 부소장 미하엘 리페르트)가 룀을 총살했다.

 

나치 돌격대 SA

 SA는 히틀러의 경호를 담당한 사병에서 시작됐으며, 나치당 산하에서도 독립적으로 운영됐다. 그들은 완장을 차고 정치깡패로 활동하면서 유대인 탄압과 나치 독재에 동원됐다. 히틀러의 직속 조직이 되어 에른스트 룀이 참모장을 맡은 이후, 1933년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이 일어나자 프로이센 주 경찰 보조조직으로 승격했다.

SA는 갈색 제복으로 유명('갈색 셔츠단')한데,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한 SA 대원은 겉은 갈색이고 속은 붉은색인 '비프 스테이크'로 불렸다. 히틀러는 자서전 『나의 투쟁』에서 SA의 세력이 생각 이상으로 커졌기 때문에 합벅적인 재판 과정을 거치지 않고 룀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히틀러 최후의 경재자였던 룀이 처형된 후 반란음모죄를 뒤집어쓰자 나치당 좌익은 일소됐다. 또한 룀은 공공연한 동성애자였는데, 장검의 밤 이후 독일의 동성애자들은 다하우 강제수용소에 구속됐다.

룀이 죽은 뒤에도 국방군의 수십 배 규모인 400만 돌격댜는 해체되지 않았다. 준군사조직으로서 부대원들은 고급 교육을 받았으며, 엘리트 부대 펠트헤른할레는 1938년 오스트리아 합병 때부터 활동했다. 히틀러는 SA 최고지도자 자리를 1945년 몰락과 사망시까지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