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페르디난트(Franz Ferdinand)는 1863년 오스트리아 제국(1867년부터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동생인 카를 루트비히 대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89년 황제의 유일한 아들인 루돌프 황세자가 자살하자, 1896년 사망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일약 황위 계승자가 됐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1898년 엘리자베트 황후(애칭 '시씨')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해 황실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수년간 이어진 황제의 결사반대를 물리치고 1900년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시녀였던 여백작 조피와 결혼했다. 그는 귀천상혼의 관례에 따라 그들 부부의 자녀에게서 제위계승권을 박탈하는 조건까지 감수했다.
파격적인 결혼으로 인해 이미 황제와 반목했던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고질적인 민족문제를 해결하려는 진보정책으로 황제를 비롯한 보수파와 대립 노선을 걸었다. 자국 내 슬라인의 지위를 개선하여 삼중왕국을 도모하려던 그는 기득권 세력인 헝가리인은 물론 보스니아가 독립하여 범슬라브주의로 연대하길 바란 세르비아인의 반감을 샀다.
1913년 육군총감에 취임한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1914년 6월 28일, 아내인 조피 여공작과 함께 군대 사열을 위해 보스니아의 주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다가 차량을 노린 수류탄 공격을 받았다.
1차 테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대공 부부는 무사했는데, 부상자들을 살피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던 중 운전사가 혼잡한 시내로 길을 잘못 들었다. 잠시 정차한 차량 앞으로 유고슬라비아 민족주의 비밀결사 '검은 손' 단원인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뛰어들어 두 발의 총격을 가했고,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는 각각 목과 배에 총탄을 맞고 즉사('사라예보 사건')했다.
첫 번째 셰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은 '삼국 협상'의 당사국인 영국, 프랑스, 러시아('연합국')와 독일, 오스트리아 • 헝가리('동맹국')의 충돌로 시작됐다.
1882년 독일, 오스트리아 • 헝가리와 '삼국 동맹'을 체결했던 이탈리아는 이 전쟁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핸다. 또한 일본과 미국은 연합국에, 오스만과 불가리아는 동맹국에 가입하여 세계대전에 뛰어들었다.
1914년 7월 28일에 오스트리아 • 헝가리의 세르비아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서부 전선(프랑스 동북부와 벨기에 전역)과 동부 전선(러시아 일부와 동유럽 지역)에서 4년여간 소모적인 전투가 계속되다가 1918년 11월 11일 독일(제정 붕괴 후 공화국 임시정권)이 휴전에 합의하여 연합국이 최동 승전하면서 종식된다.
이 거대한 전쟁의 결과로 독일, 오스트리아 • 헝가리, 러시아, 오스만의 4개 제국이 해체되고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입각해 다수의 신생 독립국이 성립됐으며, 오늘날 '국제연합(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이 창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