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위대한 독재자,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는 세계사에서 제일 유명한 영웅이자 암살당한 요인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기원전 100년 로마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카이사르는 매력적인 웅변가였으며 우아한 문필가였고, 전략전줄에 비상한 군인일 뿐 아니라 정치력과 권모술수에 있어서도 탁월했다.
기원전 60년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제1차 삼두정치를 공모했으며, 갈리아 전역을 제패하고 정치적으로 갈라선 폼피에우스와 반대파를 분쇄한 후에는 기원전 49년 독재관에 임명됐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7세를 여왕에 복위시킨 이집트 원정을 마치고 소어시아, 히스파니아, 아프리카의 반란을 평정한 뒤 종신 집정관이 됐다. 율리우스력(曆)을 챠용하고 빈민구제에 힘썼으며 식민지 건설을 활발히 했다.
동방 원정을 앞두고 있던 카이사르는 그가 황제가 될 것을 두려워한 브루투스 일바에 의해 기원전 44년 3월 15일, 원로원의 폼페이우스 조각상 앞에서 스물세 번이나 칼에 짤려 암살당했다.
카이사르 어록
갈리아를 정복한 카이사르가 대중적 인가가 끝없이 치솟자 위기감을 니낀 원로원과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의 군단을 해체하려고 했다. 카이사르는 이에 불복하여 기원전 49년 1월 군대를 인솔해 루비콘 강을 건넜다.
갈리아와 이탈리아의 경계를 이루는 루비콘 강을 건넌다는 것은 쿠데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때 카이사르가 "주사위는 던져졌다!(Alea iacta est!)" 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운명을 건 결단을 의미하는 가장 유명한 말이 됐다.
최초의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Octavianus)는 카이사르의 양자이자 유지를 받든 후계자로, 그의 어머니 아티아가 카이사르의 생질녀였다.
카이사르 사후에 그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이어받았으며 기원전 43년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제2차 삼두정치를 시작해 반대파를 몰아냈다.
제국의 서방에서 세력을 키운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격파해 로마의 패권을 차지했다.
그가 기원전 27년 원로원으로부터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 칭호를 받음이로써 로마에 실질적인 제정이 시작됐다. 아우구스투스는 군대와 법률을 재정비하고 치안, 무역, 교통, 부(富)를 증진시키는 등 내치에 힘써 이른바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또한 대규모 건축사업을 통해 로마를 대리석의 도시로 변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