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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열강에 의한 현대 아랍 국가의 형성, 압둘라 1세

Genius Dotory 2022. 9. 3. 16:42

압둘라 1세(Abdullah 1)는 1882년 오스만튀르크 제국 메카에서 헤자즈(히자즈)의 샤리프(예언자 무함마드의 혈손) 후세인 이븐 알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정식 이름은 압둘라 이븐 후세인이다. 그는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과 헤자즈에서 교육받는 동안 아랍 민족주의에 눈을 떴다.
1916년 6월 오스만 제국의 통치에 대항한 '아랍 혁명(아랍 반란)' 당시 영국 육군 중령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와 공조하여 요르단의 독립을 이끌었다. 1920년 요르단 동부 고원지대에 지방정권을 수립했고, 1923년 4월 영국 위임통치령으로 설립된 트란스요르단 토후국의 아미르로 즉위했다.
1946년 5월 25일 트란스요르단은 런던 조약에 따라 영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하여 요르단('요르단 하쉬마이트 왕국' 또는 '요르댜 하심 왕국')으로 국호를 변경했다. 한편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했을 당시 아랍 여러 나라가 즉각적인 공격에 나서 제1차 중동 전쟁이 벌어졌다.
1949년 2월 국제연합의 조정으로 휴전이 성립하자 요르댜은 팔레스타인 동부(요르단 강 서안)를 점령하고 1950년 정식으로 병합했다(이 영토는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빼앗가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 중에 압둘라 1세는 아랍 연맹의 뜻과 별개로 이스라엘과 독자적인 평화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기에 친서방적 온건 외교로 아랍 국가들의 불만을 샀다.
1951년 7월 20일 압둘라 1세는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모스크에서 나흘 전 암살당한 국무총리의 애도문을 낭독하다 과격파 아랍 민족주의자인 팔레스타인 청년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열강의 아랍 분할 음모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은 중동에 대한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무너뜨리고 아랍을 식민화하려는 전략을 모의핺다.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 제국의 동의를 얻어 1915년 11월부터 이듬해까지 비밀리에 합의한 소아시아 협정('사이크스 • 피코 협정')으로 이들 나라는 중동의 세력권을 분할했다. 영국에 지중해 점유권 및 요르단과 이라크 남부 등이 할당됐고 프랑스에는 터키 남동부와 이라크 북부, 시리아, 레바논 등이 할당됐으며 러시아는 이를 묵인하는 대가로 이스탄불과 터키 해협 등을 할당받았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당시 볼셰비키가 이 협정의 내용을 폭로함으로써 아랍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와 같이 오늘날 중동 국가의 대부분은 서구 열강의 식민계획에 의해 형성됐다.

터키의 독자 노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걷잡을 수 없이 붕괴했닺 이에 급진적인 '청년 튀르크당' 출신 장군 무스타파 케말은 1920년 앙카라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연합국의 내정간섭('세브르 조약')을 물리치기 위한 터키인의 민족독립전쟁을 지휘했다. 그는 1922년 말 전제왕정을 폐지하고 터키 공화국을 수립해 대통령에 취임했다.
1923년 7월 연합국과 세브르 조약을 개정하는 '로잔 조약'을 체결해 영토를 회복하고 주권국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정당정치와 개혁 • 개방에 힘썼고, 이슬람의 영향을 축소했다. 전통 복장을 폐지하고 남녀 합동 교육을 실시했으며, 일부일처제를 포함하는 남녀 평등권을 확립했다. 또한 아랍 문자 대신 로마자 표기를 도입하는 한편,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다.
무스타파 케말은 신생 터키 공화국을 서구식 민주법치국가로 현대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1934년 국회로부터 국부라는 의미의 '아타튀르크' 칭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