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운 영웅, 타탕카 이요탕카
타탕카 이요탕카(혹은 타탕카 이오탕케, 영어로 '시팅불'), 즉 '웅크린 소'는 1831년경 서부 수우족(라코타 혹은 테톤족) 분파인 훙크파파 부족 공동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느림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첫 전투에서 적을 제압한 열네 살에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았다(아버지는 '뛰어 오르는 소'가 됐다).
그는 용맹한 전투능력과 지혜로운 리더십, 신비한 영능력을 인정받아 전사집단 '한밤중 강심장'의 핵심인물이 됐다. 1863년부터 백인들의 침입에 맞서 싸웠으며, 1867년 수우족 전체의 추장이 됐다. 수우족의 신성한 '검은 언덕(Black Hills)'에서 황금이 발견되자 미국 정부는 원주민들의 땅을 보장한 '라라미 협약'을 파기하고 1874년 제7기병대를 급파했다. 그리고 1875년 말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이주 • 정착할 것을 통보했지만 수우족은 이를 거부했다.
1876년 부족 연합의 대추장으로 추대된 웅크린 소는 샤이엔족, 아라파호족과 공동 전선을 형성했다. 그는 강력한 지도력으로 부족들을 단결시켜 남북 전쟁의 영웅 조지 A. 커스터(George Armstrong Custer) 중령이 지휘하는 주력부대를 궤멸시키고 리틀빅혼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미국 정부의 개발정책으로 주요 식량자원인 버펄로의 개체수가 급감하면서 굶주림에 시달린 부족민들이 이탈하자, 1877년 남은 부족민들을 이끌고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마저 미국과의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이들 부족을 방치했기 때문에 웅크린 소는 1881년 몬태나 부포드 요새에서 항복했다.
1883년 '선 바위 관리소(Standing Rock Agency)'로 옮겨진 후 사면된 그는 생계를 위해 <와일드 웨스트 쇼(Wild West Show)> 공연에 출연해 인기를 얻었다. 이 무렵 원주민 전통신앙과 기독교가 혼합된 '유령의 춤(Ghost Dance)'이 수우족 사회에 급속히 확산되자 웅크린 소는 반란교사 혐의를 받았다. 결국 수우족의 위대한 추장 타탕카 이요탕카는 1890년 12월 원주민 출신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아들 '까마귀발'을 비롯한 다른 부족민들과 함께 살해됐다.
수우족의 비극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수우족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다코타(샌티), 나코타(얀크톤), 라코타(테톤) 부족을 통칭한다. 이들은 평원에서 이동생활을 하면서 천막집에 살았고, 수렵과 채집을 통해 공동체의 삶을 영위했다.
전투에서 사망한 적들의 머리 가죽을 벗기는 풍습이 있었으며, 매년 '태양의 춤(Sundance)' 의식을 거행했다. 수많은 광부와 총잡이들이 황금을 찾아 몰려든 '골드러시' 이후 자신들의 땅에 침입한 백인들에게 완강히 저항했지만, 미국 정부에 의해 점차 보호구역으로 밀려났다.
수우족은 성난 말과 웅크린 소 등 유능한 지도자들이 살해되고 1890년 '운디드니 대학살'을 겪은 후 저항할 힘을 완전히 잃었다.
또 한 명의 원주민 영웅
리틀빅혼 전투에서 타탕카 이요탕카와 함께 제7기병대를 섬멸한 수우족 전사(오글랄라 부족 추장) 타슝카 위트코(혹은 타슈카 위트코, 영어로 '크레이지호스'), 즉 '성난 말'은 1877년 결국 네브래스카에서 항복했으나 포로가 된 그를 짐승 취급한 경찰에게 저항하다 살해되어 운디드니에 묻혔다.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 남서부 러시모어 산봉우리에 조각된 위대한 미국 대통령 4인(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거대두상 인근에 1948년부터 타슝카 위트코의 거대 기마상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