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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친위대에 의해 제거당한 젊은 술탄, 오스만 2세

Genius Dotory 2022. 8. 26. 16:43

오스만 2세(Osman 2)는 1604년 아흐메트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스 출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여러 외국어에 능통하고 총명했던 오스만은 정신적 문제가 있었던 숙부 무스타파 1세가 폐위당한 1618년 열다섯 살에 술탄으로 즉위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친정을 선언했으며, 전쟁 중이던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의 명군주 아바스 대제와 세라브 조약을 체결해 국경을 안정시켰다.
1621년 호틴 전투에서 참패하여 폴란드 침공에 실패한 후 타락한 예니체리 군단의 문제를 깨닫고 폐지를 결심했다.
1622년 메카 순례를 명분으로 새로운 군대를 모집하려 했던 계획이 발각되어 폐위당하고 감금된 다음 날 끔찍하게 살해됐다. 오스만 2세는 예니체리의 폐단을 인지하고 그들에 의해 시해당한 최초의 오스만 제국 술탄이었다.
그의 사후, 전임 술탄 '미치광이 무스타파'가 복위됐다가 이내 다시 폐위됐고, 오스만 2세의 동생인 무라트 4세가 즉위했다.

예니체리
예니체리는 '새로운 군대'라는 뜻의 정예부대로, 14세기에 창설된 오스만 제국 술탄의 친위대를 일컫는다. 이들은 점령지 기독교 가정에서 군인, 관료, 예술가 등이 될 소년을 징집하는 '데브시르메'  제도에 의해 충원되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엄격한 훈련과 교육을 받았다.
알라와 술탄에게만 복종하는 용맹함과 탁월한 전투력으로 당시의 유럽 국가들에서 '악마의 군단'으로 불리기도 했다.
예니체리는 명목상으로 술탄의 노예였지만 제국이 확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득권 세력으로 지위가 상승했다.
16세기 말 결혼 및 지위의 세습이 가능해진 뒤에는 점차 타락하고 군기가 문란해져 술탄의 폐립과 생사마저 좌우할 지경이 됐으며, 19세기 초반에야 신식 군대에 의해 해체되고 전멸당했다.

술탄, 칼리파, 샤
'술탄'은 원래 이슬람 세계의 정치 지도자를 뜻하는 명칭이며, '칼리파'는 세속의 군주와 달리 이슬람의 종교적 최고권위자다.
16세기 초부터 오스만의 술탄은 칼리파의 지위까지 겸임하고 있었다. 또한 보다 정확히 말하면 비잔티움 제국을 정복하여 제정 시대를 연 메흐메트 2세 이래로 오스만 제국 술탄은 황제 또는 모든 왕들의 주인이라는 의미의 '파디샤' 등으로 칭했다.
술탄이란 기존의 칭호는 관습적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이때부터 황자, 황녀나 태후, 후궁 등을 일컫는 명칭이 됐다. 한편 페르시아의 왕조는 '샤(왕)' 또는 '샤한샤(왕중왕)'라는 명칭을 썼다.